국산 AI 반도체, '검증'을 넘어 '서비스'로 — K-Perf가 쏘아올린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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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0일 · 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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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과기정통부·TTA·IITP가 추진하는 국산 AI 반도체 성능 검증 체계 'K-Perf' 시범 검증에서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제품이 모두 수요기업 요구 성능 기준을 충족했다.
  • 두 회사는 서로 다른 전략을 택했다. 리벨리온은 단일 카드로 초거대 모델을 구동하는 집적형, 퓨리오사AI는 여러 카드를 연결하는 확장형으로 같은 시험에 임했다.
  • 실증·검증 단계에 머물던 국산 NPU가 KT클라우드·KB금융·삼성SDS·SK텔레콤 등 실제 서비스 현장으로 넘어가며, '칩도 모델도 외산'이라는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국산 AI 반도체, '검증'을 넘어 '서비스'로 — K-Perf가 쏘아올린 신호

'벤치마크가 생겼다'는 것의 의미

그동안 국산 AI 반도체를 둘러싼 가장 곤란한 질문은 단순했다. "그래서 엔비디아 대비 얼마나 좋은데?" 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두가 동의하는 측정 자(尺)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자체 테스트 결과를 들고나오니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K-Perf는 바로 그 자를 만드는 작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추진하는 국산 AI 반도체 성능 검증 체계로, AI 챗봇과 문서 검색, 보고서 생성, 대용량 문서 분석 같은 실제 서비스 환경을 기준으로 성능을 측정한다. 합성 벤치마크가 아니라 '현업에서 쓰는 작업'으로 잰다는 점이 핵심이다. 디자인으로 치면, 모니터 색역 수치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쇄물을 뽑아 눈으로 맞춰보는 방식에 가깝다.

같은 시험, 다른 풀이

흥미로운 건 두 회사가 같은 시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과했다는 점이다.

리벨리온은 1200억 개 규모 파라미터를 가진 GPT-oss-120B를 단일 카드 기반으로 구동했고, 퓨리오사AI는 LG AI연구원의 엑사원 4.0 32B 모델을 활용해 여러 장의 레니게이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시험에 참여했다. 하나는 칩 한 장에 거대 모델을 통째로 올리는 집적, 다른 하나는 여러 장을 묶어 처리량을 키우는 확장이다.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 철학의 차이다. 단일 카드 구동은 도입 기업 입장에서 구성이 단순하고 운영 부담이 적다. 멀티카드 확장은 데이터센터처럼 규모를 계속 키워야 하는 환경에서 강점을 가진다. 검증 결과 두 회사 제품 모두 수요기업이 요구하는 성능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게 오히려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신호다.

진짜 변화는 '레퍼런스 리스트'에 있다

벤치마크 통과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칩이 실제로 어디에 들어가기 시작했는가다.

리벨리온 쪽을 보면, KT클라우드가 공공기관 전용 클라우드에 리벨리온의 아톰 플러스를 적용한 NPU 서버 상품을 출시했고, 이는 국내 NPUaaS 가운데 처음으로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을 획득한 서비스다. 여기에 KB금융그룹과의 업무협약, SK텔레콤 에이닷 통화요약 서비스 적용까지 더해지며 공공·금융·통신으로 발이 넓어졌다.

퓨리오사AI도 만만치 않다. 국민성장펀드가 약 8000억 원 규모 직접투자를 결정했고, 삼성SDS는 레니게이드 기반 NPUaaS 출시를 준비하며 기업이 반도체를 직접 구축하지 않고 구독 형태로 AI 추론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글로벌 쪽으로는 브로드컴과 차세대 AI 가속기 공동 개발에 나서며 양사의 가속기·네트워크 기술을 결합해 대규모 AI 추론 인프라를 개발할 계획이다.

'검증'에서 '운영'으로

이 모든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실증 사업과 성능 검증 중심이었던 시장이 실제 서비스 도입 단계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기술 블로그 관점에서 이게 중요한 이유는, AI의 무게중심이 '모델'에서 '인프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의 경쟁이 한 차례 지나가면, 그다음은 그 모델을 누구의 칩 위에서, 얼마의 전력으로, 어디 데이터센터에서 돌리느냐의 싸움이 된다. '칩도 외산, 모델도 외산'이라는 구조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AI 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K-Perf의 첫 결과가 의미 있는 건, 그 독립의 출발선에 한국이 측정 가능한 형태로 들어섰다는 신호여서다.

물론 벤치마크 통과와 시장 장악은 다른 이야기다. 엔비디아의 진짜 해자는 칩 성능이 아니라 CUDA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라는 점에서, 국산 NPU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다만 적어도 지금은, 질문이 "성능이 나오긴 하나?"에서 "어디에 먼저 넣을까?"로 바뀌었다. 그 변화 자체가 기록할 만한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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