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프티 팔레가 프륀 누리의 기획 전시 비지오네르를 10월 20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가 주목하는 대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파리에서 살거나 활동했던 여성 조각가 18명이다. 사라 베르나르, 케테 콜비츠, 제인 푸플레 등을 기리는 새로운 초상들이 미술관의 기존 소장품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 누리는 미술사 속에서 잊히거나 흩어진 조각 작품을 대신 복원해 제작하기보다, 그 작품을 실제로 창작했던 예술가의 얼굴 자체가 관람객의 이동 경로에 직접 들어서도록 구성했다.
소속 갤러리 템플롱의 설명에 따르면 기획 과정에는 미술사 연구자 3명이 체계적으로 수집한 기록 문서와 인물 사진이 폭넓게 쓰였다. 이번 전시는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몸이 주로 조각의 대상이나 시각적 소재로만 다루어지던 방식과, 여성이 조각의 주체적인 제작자로 기록되는 일 사이에 존재해 온 커다란 간격을 짚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예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서술에서 누락되었던 여성 조각가들의 삶과 작업 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기획 의도가 여기에 담겼다.
구글 아트 앤 컬처와의 협업 역시 이들 여성 조각가의 삶과 작업실 환경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영상 제작으로 확장되었다. 물리적인 전시장에서 만나는 대형 흉상 조각들과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구현한 영상은 기억을 되살리는 서로 다른 통로가 된다. 관람객은 미술관 내부를 직접 걸으며 만나는 실물 조형물뿐만 아니라, 기록의 빈틈을 메우는 디지털 영상을 함께 마주하며 과거의 창작 환경을 다각도로 이해하게 된다.
소장품 사이에 놓인 석고 표면과 대리석 눈
누리는 새롭게 제작한 흉상들의 주재료로 석고를 선택하고 눈동자 부분에는 대리석을 결합했다. 템플롱은 이러한 재료적 선택을 프티 팔레가 소장하고 있는 작업실 석고상 컬렉션의 맥락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석고는 최종적으로 청동이나 대리석 완성작을 주조하기 직전에 거치는 작업 과정의 중간 단계 재료였다. 설령 최종 완성작이 시간이 지나 유실되거나 파괴되었더라도 석고는 제작 당시의 생생한 흔적과 작가의 손길을 온전히 보존해 전하는 매체가 된다.
흰 석고 표면은 단순히 시각적인 통일감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며, 모든 출품작이 일률적으로 같은 재료로 마감된 것도 아니다. 실제 공개된 작품 명세에 따르면 제인 푸플레 초상에는 청동과 대리석 눈이 사용되었고, 클라라 릴케베스트호프 초상에는 석고와 무광 백색 도장이 적용되어 있다. 이러한 재료와 마감 처리의 차이는 18명의 여성 조각가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예술적 궤적과 성격을 조형 언어로 세심하게 구별해 담아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새로 만들어진 초상들은 높이가 약 70센티미터에서 최대 3.5미터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눈의 모티프는 독립된 초상 조형물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술관 소장품의 받침대 위에도 정교하게 배치되어 관람객의 시선이 여러 작품 사이를 유기적으로 따라 흐르게 이끈다. 작은 흑백 인물 사진으로 확인했던 과거의 얼굴들이 실제 관람객의 신체보다 훨씬 거대한 부피로 공간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체감되는 직접적인 조우가 된다.
사료 공백을 채우는 생성 영상과 카메라 이동
누리와 구글 아트 앤 컬처는 감독 뱅상 로르카와 협력해 약 10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완성했다. 구글의 제작 설명에 따르면 이 작업은 편지, 일기, 인물 사진 등의 사료를 모은 약 1년간의 면밀한 조사를 토대로 진행되었다. 당시 여성 조각가들이 활동했던 실제 작업실 사진은 현재 충분히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진은 생성 이미지 기술과 정밀한 이미지 편집 기법을 복합적으로 동원해 낸시 엘리자베스 프로핏, 제인 푸플레, 카미유 클로델 등의 작업 환경을 시각적으로 복원했다.
구글은 제미나이로 구축한 도구를 활용해 남아 있는 평면 기록 사진에서 3차원 공간 모델을 구성하고 가상 카메라 경로를 역동적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이는 당시 실제로 촬영되어 보존된 과거 영상 자료의 발굴이 아니라, 평면으로 남아 있는 제한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공간감과 움직임을 새롭게 해석해 구축해 낸 제작물이다. 따라서 원본 기록 사진에 담긴 역사적 정보와 기술적 제작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채워 넣은 가상 요소를 꼼꼼히 구별해 볼수록 영상이 취한 선택의 의미가 뚜렷해진다.
다큐멘터리의 다른 장면에서는 앙투안 부르델의 작업실을 찍은 실제 사진 속에 분명히 존재하던 여학생들이 이미지 편집을 통해 서서히 지워지고 남성들만 화면에 남겨지는 연출이 나타난다. 구글이 소개한 이 화면은 과거의 역사적 현장을 사실 그대로 평면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사료에 남아 있던 인물을 시각적으로 지워내는 역설적인 동작을 통해, 누가 역사적 기억 속에 살아남고 누가 서술에서 지워졌는지를 관람객에게 직관적으로 폭로한다.
남은 사료와 새로 만든 장면의 경계
편지와 일기, 인물 사진은 과거에 남은 기록이고 새 흉상은 현재 제작한 작품이다. 생성 영상 속 작업실은 다시 사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시각적 해석이다. 세 매체를 함께 제시하더라도 같은 수준의 역사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장면이 풍부해졌다는 사실이 실제 작업실의 모든 배치와 물건을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생성 장면이라는 이유로 남아 있는 사료의 의미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엇이 기록이고 어느 부분을 새로 구성했는지 알 수 있어야 관람자는 여성 조각가들의 실제 이력과 오늘의 전시가 건네는 해석을 함께 읽을 수 있다.
| 매체 | 만들어진 시점·역할 |
|---|---|
| 편지·일기·인물 사진 | 당시의 흔적을 전하는 사료 |
| 누리의 새 초상 | 역사적 인물을 오늘의 전시 공간에 세운 작품 |
| 생성한 작업실 영상 | 사료와 조사에 바탕을 둔 현재의 시각적 구성 |
프티 팔레 전시실에 들어선 관람객은 먼저 거대한 흉상의 물리적 크기와 대리석 눈을 마주한 뒤 받침대와 소장품의 배치로 시선을 확장하게 된다. 여성 조각가들의 초상을 별도의 독립된 전시실에 분리해 모아두지 않고 기존 컬렉션 사이에 나란히 세운 배치는, 미술관이 오랜 기간 익숙하게 제시해 온 진열 질서와 위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이번 전시와 관련해 안내된 일정에는 공개된 자료 간에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구글의 소개 자료에는 전시 종료일이 1월 30일로 잘못 표기되어 있으나 프티 팔레와 템플롱은 2027년 1월 24일까지 전시가 진행된다고 일관되게 안내한다. 관람 일정을 확인하려는 관객은 주최 기관인 미술관의 공식 공지 날짜인 2027년 1월 24일을 기준으로 방문 계획을 잡아야 한다.
ARCH.B 의견
기존 컬렉션의 동선 사이에 새 흉상을 배치한 물리적 기획과 생성 기술을 활용해 사라진 작업실을 시각화한 영상은 사료의 공백을 다루는 유효한 실천이다. 완성작 이전의 상태를 담아온 석고라는 매체는 잊힌 여성 조각가들의 작업 과정을 프티 팔레의 역사적 컬렉션 맥락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며 미술관의 진열 관행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든다. 물리적인 크기와 시선의 배치가 관람객의 신체 감각을 자극하며 역사적 인물을 대등한 대화의 상대로 세워 올린다.
생성 도구로 인물을 지우거나 공간을 확장하는 영상 연출 역시 기술적 화려함 자체보다 역사 서술의 결손과 배제를 선명하게 고발하는 목적에 복무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앙투안 부르델의 작업실 사진에서 여학생들을 지워내는 화면처럼, 기록의 결핍을 시각적 사건으로 변환하는 방식은 관람객에게 역사적 서술의 편향을 강력하게 환기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시도를 넘어 사료를 매개로 한 비판적 해석의 층위를 효과적으로 형성한다.
다만 사료가 부족한 자리를 생성 기술과 가상 이미지로 메우는 방식은 다른 역사적 복원 사례에 무비판적으로 확장 적용하기 어렵다. 원본 사진에 담긴 사실적 정보와 인위적으로 채워 넣은 가상 요소의 경계를 명확히 분리해 전달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상상과 사료를 혼동할 위험을 안게 된다. 물리적 조각과 디지털 영상이 기억을 되살리는 유의미한 시도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적 해석이 어디까지 엄밀한 기록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조건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