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주년 베로나 마르모막, 석재의 물성을 재정의하다
세계 최대 천연석 산업 박람회인 마르모막(Marmomac)이 2026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이탈리아 베로나 피에레에서 60회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는 전 세계 54개국에서 1,300개 이상의 채석·가공 기계·마감재 전문 기업이 참가했으며, 12개 실내 전시관과 8개 야외 전시 구역을 포함해 총 76,000㎡에 달하는 면적에서 진행되었다. 과거 대리석과 화강암 등 천연 원석을 상업용 표면 마감재 수준으로 나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 행사는 파빌리온 10을 예술감독 조르조 카날레(Giorgio Canale)의 총괄 아래 ‘더 베드록(The Bedrock - Leading the Future of Natural Stone)’이라는 주제의 학술·문화 연구 전초기지로 재편했다.
이번 박람회는 단순한 산업재 거래를 넘어 천연석이 지닌 구조적 잠재력과 친환경성을 입증하는 장으로 평가받았다. 베로나 구도심 일대와 연계된 야외 전시 '마르모막 & 더 시티'를 포함해 도시 전역으로 공간을 확장한 이번 행사는, 석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고도화된 수치제어 가공 기술과 순환 건축의 접목을 전면에 내세웠다.
알고리즘과 전산화 기술이 되살린 현대적 입체절석술
전시의 핵심 기획 중 하나인 《옛날 옛적 건축의 ‘하늘’이 있었다(C'era una volta il “cielo” dell'architettura)》는 바리 폴리테크닉 대학교의 주세페 팔라카라(Giuseppe Fallacara) 교수가 기획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마르모막 밋츠 아카데미 2026'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전 세계 17개 대학 연구진과 협력하여, 과거 고전 건축에서 석조 돔과 볼트 구조로 구현되던 웅장한 천창을 현대적 엔지니어링으로 재해석했다. 전산화 알고리즘과 고전 입체절석술(stereotomy)을 결합해 석재 단위체를 경량화하고 자립형 아치로 직조해냄으로써, 육중한 석재가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이와 맞물려 산업 디자이너 라파엘로 갈리오토(Raffaello Galiotto)는 《물질적 카리스마(Carisma Materico)》 전시를 통해 CAD 및 다축 CNC 수치제어 가공 기법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절단 손실을 극소화한 맞물림형 워터젯 타공 벽체와, 세 장의 트래버틴 판재를 정밀 가공해 거대한 단일 바위가 기울어진 채 떠 있는 형상을 구현한 '아이언스톤 그란데 포르마토(Ironstone Grande Formato)' 등 4점의 대형 구조 목업이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토착 축조 지혜의 귀환과 부산물의 순환 디자인
전통 기술의 재조명과 환경적 책임 의식 역시 두드러졌다. 영국 건축가 조셉 그리마(Joseph Grima)와 연구 플랫폼 스페이스 캐비어(Space Caviar)가 선보인 《돌 위에서 – 레시니아로부터 배우다(On Stone – Learning from Lessinia)》는 베로나와 트렌티노 접경지 고원의 수백 년 된 토착 석조 가옥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들은 단일 석재로 지붕, 벽체, 계단, 문틀을 모두 해결하던 버내큘러 축조 방식을 '분해된 액소노메트릭' 형태로 전시 공간에 펼쳐놓았으며, 현지 장인이 다듬은 부재와 실제 고택 자재를 병치해 별도의 화학 결합재 없이도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한 순환 건축 모델을 제시했다.
한편 디자이너 다비데 파비오 콜라치(Davide Fabio Colaci)는 1953년부터 2022년까지의 대리석 인테리어 걸작 10선을 조명한 《마블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지오 폰티와 알도 로시 등의 역사적 도면 옆으로 각 프로젝트의 가공 부산물(offcuts)과 폐석재를 수거해 상감 기법으로 맞춘 대형 바닥면을 설치했다. 관람객들은 재생 대리석 바닥을 직접 밟으며 천연석이 단순 피복재가 아닌 공간을 점유하고 조율하는 입체적 요소임을 경험했다. 전시장 밖에서는 도메니코 라이몬디의 총괄 아래 18점의 석재 조각 및 공공 벤치가 베로나 도심에 설치되어 일상적 도시 가구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표면 치장에서 내력 구조로: 석재 건축의 패러다임 전환
마르모막 2026의 기획 전시들은 석재가 지난 반세기 동안 갇혀 있던 '고급 표면 마감재'라는 협소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축계의 자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현대 건축에서 대리석은 얇게 켜진 슬래브 형태로 콘크리트나 철골 골조 위에 덧붙여지는 시각적 외피로 소비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팔라카라 교수와 갈리오토 디자이너가 선보인 실험들은 석재 본연의 압축 강도와 물성을 컴퓨터 연산 설계를 통해 제어할 때, 석재 자체가 구조를 지탱하는 자립형 구조체로 진화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특히 파라메트릭 도면화와 로보틱 다축 가공의 성숙은 전통 장인의 손기술에만 의존하던 복잡한 석재 맞물림 방식을 디지털 양산 단계로 끌어올렸다. 이는 철근 콘크리트가 독점해온 구조 시스템에 친환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가공 에너지를 제어하고 접착재를 최소화하는 건식 맞물림 방식의 입체절석 구조는, 건축 수명이 다했을 때 자재를 온전히 회수할 수 있는 해체 용이성(Design for Deconstruction) 관점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을 시사한다.
실무적 과제: 저탄소 순환형 석재 건축을 위한 엔지니어링 조건
이러한 실험적 흐름이 실제 건설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실무적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레시니아 가옥 사례나 콜라치의 상감 프로젝트가 보여준 순환 건축의 교훈은 실무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석재의 가공 잔여물을 상업화하기 위한 표준 규격화와 물성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무 건축가들은 채석장마다 천차만별인 석재의 결(grain)과 균열 위험성을 정량화하기 위해 재료의 비파괴 검사와 구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결합한 검증 툴을 현장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석재를 단열재 및 기밀층과 어떻게 일체화할 것인가에 대한 상세 디테일 정립도 요구된다. 단일 덩어리 석재는 열전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전통 축조의 축열 성능을 현대 에너지 규준에 맞추어 보완하는 다층 복합 시스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채석 잔재를 업사이클링하고 CNC 가공 경로를 최적화하여 재료 손실을 0에 가깝게 줄이는 디지털 공정 표준화야말로, 천연석을 미래 친환경 건축의 핵심 지속가능 자재로 자리 잡게 할 결정적 열쇠가 될 것이다.
출처
Dezeen의 원출처와 본문에 표시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어로 재구성했습니다. ‘ARCH.B 분석’은 자료를 읽고 덧붙인 편집 해석입니다.
Five Marmomac highlights that explore natural stone and new technology (새 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