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패브릭으로 탈바꿈한 네덜란드 건축 아카이브 공간
건축 및 디자인 스튜디오 스페이스 파퓰러(Space Popular)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니우에 인스티튜트(Nieuwe Instituut) 내부의 상설 전시 공간인 '컬렉션 갤러리(The Collection Gallery)'를 완공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현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밝고 차가운 미니멀리즘 양식의 '화이트 큐브'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스튜디오는 공간 전체를 디지털 인쇄 카펫과 부드러운 패브릭 마감재로 감싸 방문객이 라운지나 클럽에 들어선 듯 아늑함을 느끼도록 연출했다.
컬렉션 갤러리는 길고 좁은 평면 구조를 띠고 있으며, 1850년대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약 700명의 네덜란드 건축가 및 도시계획가 아카이브, 총 400만~450만 점에 달하는 국립 건축·도시계획 컬렉션을 물리적 모형과 디지털 매체로 집약해 선보인다. 스페이스 파퓰러는 어두운 톤과 부드러운 그라데이션을 활용해 관람객이 서두르지 않고 머물며 촉각적인 안락함 속에서 전시를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50cm 그리드와 색채 코드로 설계된 다학제적 전시 시스템
전체 공간 배치는 그래픽 디자이너 마리아나 로방(Mariana Lobão)과의 협업을 거쳐 50cm × 50cm 정방형 그리드가 인쇄된 카펫을 기준으로 정밀하게 구획되었다. 이 기하학적 그리드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전시 체계 전체를 지탱하는 설계 모듈이다. 목공 장인 롭 덴 뒬크(Rob den Dulk)가 제작한 목재 좌대와 쇼케이스 역시 이 50cm 격자 모듈에 맞춰 카펫 재질로 감싸졌으며, 유리 케이스 안에는 건축 모형과 원본 자료가 거치되었다.
갤러리는 색상 코드로 구분된 5개의 주제별 영역으로 나뉜다. 방문객은 주택 부족, 정원 도시, 여성 건축가의 역할, 컴퓨터 지원 설계 등 네덜란드 건축사 주요 의제를 정해진 순서 없이 자유롭게 오가며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 면에는 40미터에 이르는 긴 콘크리트 벽체가 자리잡고 있어 대형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기능하며, 목재 가구에 매립된 인터랙티브 스크린과 결합해 입체적인 멀티미디어 경험을 제공한다.
공공 아카이브의 탈권위화와 체류형 큐레이션 전략
스페이스 파퓰러의 이번 디자인은 방대한 공공 아카이브를 일반 대중에게 개방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 거리감을 공간 언어로 해체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 연구자 중심의 학술 보존소 성격을 띠던 건축 아카이브는 고문서와 설계 도면의 특성상 일반 관람객에게 다소 딱딱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인상을 주기 쉽다. 이때 조도를 낮추고 바닥부터 가구까지 카펫으로 감싼 라운지형 공간 구성은 관람객의 긴장을 완화하는 심리적 완충 장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선형적 연대기 순서를 배제하고 5개의 색채 영역으로 분할한 동선 역시 관람 주도권을 큐레이터에서 방문객으로 이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관람객이 바닥의 색상과 그리드를 감각적으로 인지하며 스스로 경로를 재조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건축 아카이브를 하나의 완성된 정사(正史)가 아닌 지속적으로 재해석 가능한 파편들의 네트워크로 경험하게 만든다.
장기 연구 성과와 시사성을 담아내는 가변적 운영 플랫폼
이번 컬렉션 갤러리는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OCW)의 후원으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간 진행된 대규모 아카이브 보존 및 디지털화 사업인 '건축에 더 가까이(Architectuur dichterbij / Disclosing Architecture)'의 핵심 성과를 토대로 조성되었다. 2026년 6월 18일 특별전 'Nieuw binnen #2'와 함께 정식 개막한 이 공간은 2029년 5월까지 약 3년간 상설 운영된다.
갤러리는 고정된 정적 유물 전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시사 현안과 도시적 이슈를 반영해 전시 스토리와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교체·추가하는 유동적 방식을 채택했다. 관람객은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갱신되는 컬렉션의 새로운 맥락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패브릭 기반 아카이브 전시의 실무적 가능성과 유지관리 과제
전시장 바닥과 가구 표면에 전면적으로 패브릭을 적용하는 방식은 현대 공간 디자인에서 시각적 온기와 흡음 효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해법이다. 40미터에 달하는 노출 콘크리트 벽체가 지닌 반향음을 카펫 소재가 완화해주므로, 복수의 디지털 인터랙션 기기와 프로젝션 음향이 혼재된 환경에서도 쾌적한 청각적 분리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무적 관점에서는 3년이라는 장기 운영 기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직물의 마모, 오염, 보풀 등 유지관리 부담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특히 대중적 집객을 목표로 하는 공공 공간의 특성상 일정한 동선 집중 구역의 표면 손상이나 청결 관리는 섬세한 보수 계획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완성도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향후 패브릭 기반 상설 전시를 기획하는 실무진에게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출처
Dezeen의 원출처와 본문에 표시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어로 재구성했습니다. ‘ARCH.B 분석’은 자료를 읽고 덧붙인 편집 해석입니다.
Space Popular creates carpet-covered gallery for Nieuwe Instituut (새 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