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 게스트룸의 파격적 전환과 거주형 아카이브
런던예술대학교(UAL)가 첼시 칼리지 오브 아츠 캠퍼스 내에 자리한 방문자용 숙소 '아터베리 플랫(The Atterbury Flat)'을 학생 창작물로 가득 찬 생활형 쇼케이스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2급 등재 건축물(Grade II listed)인 옛 육군 군의학교 건물에 위치한 이 2베드룸 아파트는 2005년 대학 이전 이후 주로 방문 교수나 귀빈을 위한 단조로운 임시 숙소로 쓰여 왔습니다.
이번 개편은 UAL 강사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이 타인먼-캠벨(Zoë Tynan-Campbell)의 기획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동문 큐레이터 애비게일 리그비, 바이라비 요가시밤과 협력해 UAL 산하 6개 칼리지, 58개 전공에 걸친 학생 및 졸업생 400여 명을 연결했고,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2026 기간에 맞춰 1차 수집작 117점을 공간에 정식 안착시켰습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디자인 자산, 공간을 채운 기물들
아터베리 플랫에 배치된 기물들은 관람용 오브제에 머무르지 않고 투숙객이 먹고 자고 씻는 모든 행위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멀티디스플레이너리 디자이너 몰리 쿡(Molly Cook)이 현장 리서치를 통해 도출한 색채 팔레트를 기준으로 전체 인테리어가 정돈되었으며, 주방에는 이 기준이 된 그래픽 프린트가 걸려 공간의 기조를 제시합니다.
실내에는 만지면 체온에 반응해 색이 바뀌는 벤치와 160킬로그램의 종이를 겹쳐 쌓아 만든 콘셉트 커피 테이블부터, 세라믹 아티스트 엠마 루이즈 페인이 맞춤 제작한 그린 그러데이션 타일과 일체형 세면대가 자리합니다. 여기에 노라 힌쉬의 원목 도어 핸들, 이춘 루의 3D 프린팅 취침등, 네하 라탄찬드의 방명록 서명용 대형 연필을 비롯해 동문들이 창업한 브랜드의 비누, 옷걸이, 조리도구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파인아트 중심의 기관 수집 관행을 향한 질문
이 프로젝트는 대학이나 미술 기관이 무엇을 영구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유수의 예술대학조차 소장품 체계를 점검해보면 수장고에 보관하기 쉬운 평면 회화나 사진 등 순수미술 중심의 2D 작업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디자인과 공예, 응용미술 분야의 입체물은 보관 면적과 관리 비용의 한계로 인해 졸업 전시 이후 휘발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기획진은 별도의 전시장을 새로 짓는 대신 이미 확보된 게스트룸이라는 백지(Blank Canvas)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보관과 전시의 공간적 딜레마를 해결했습니다. 사물이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두는 '생활 속 보존'은 입체 창작물의 실용성과 내구성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하는 동시에, 디자인 작업이 지닌 서사를 대학의 역사로 누적시키는 유효한 대안 모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외주 용역을 대체한 '급진적 신뢰'와 창작자 보상
아터베리 플랫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실천적 지표는 자금 집행의 구조입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전체 예산 가운데 무려 91.98%에 달하는 6만 1,686파운드(한화 약 1억 원 상당)가 참여 학생과 동문 창작자들에게 작품 매입비 및 커미션 비용으로 직접 지급되었습니다.
조이 타인먼-캠벨은 외부 인테리어 에이전시나 전문 디자인 회사에 공간 리노베이션을 일임하는 대신 내부 학생들의 역량을 전적으로 믿는 '급진적 신뢰(radical trust)'를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일회성 공모전 상금이나 단순 전시 기회에 그치지 않고, 기관이 자체 생산자들의 초기 창작물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매입해 준 실질적 지원 사례입니다.
지속 가능한 캠퍼스 인프라와 순환형 아카이브의 과제
아터베리 플랫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끝난 이후에도 방문 교수와 외빈을 위한 임시 숙소로 상시 운영되며 향후 수년에 걸쳐 기존 기성 가구들을 학생 작품으로 순차 교체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는 캠퍼스 내 노후 인프라를 단순 개보수하는 수준을 넘어, 재학생들에게는 프로페셔널 포트폴리오의 실물 레퍼런스를 제공하고 외빈에게는 대학의 역량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하는 고도의 브랜딩 도구로 기능합니다.
다만 실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기물의 파손, 마모, 위생 관리와 같은 물리적 유지보수 비용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는 실무적 과제로 남습니다. 일회성 프로젝트를 넘어 정기적인 추가 매입 예산과 유지보수 프로세스가 제도적으로 안착한다면, 다른 고등교육기관이나 문화재단에서도 충분히 벤치마킹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순환형 아카이빙 프로토콜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Dezeen Interiors의 원출처와 본문에 표시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어로 재구성했습니다. ‘ARCH.B 분석’은 자료를 읽고 덧붙인 편집 해석입니다.
UAL turns Atterbury Flat guest apartment into riotous student design archive (새 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