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디자인 집단 쇼 낫 쇼는 더치 디자인 위크의 공식 기자 만찬을 맡으면서 전시장 한구석에 식사를 덧붙이는 대신 식사 자리 자체를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아인트호벤 데 크라위스라위머의 중심 공간에 긴 테이블을 놓고 가구와 조명, 텍스타일을 그 둘레에 배치했다. 10월17~25일 DDW에서 선보인 Table of Power는 다국적 기업의 회의실 테이블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재클린 하싱크의 동명 작업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주최 측은 제도적 권력의 상징을 참여와 해석의 자리로 바꾸려는 기획으로 이 전시를 소개한다.
공식 프로그램에는 만찬의 식기와 도자기를 맡은 스튜디오 포, 유리와 커틀러리를 담당한 마르턴 바프티스트, 셰프 야스민 시후브와 음식 경험을 맡은 하팍스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식사를 위한 물건과 음식 준비 과정 전체가 가구 전시의 구성 안에 직접 들어선 셈이다. 디자인 행사의 의례적인 부대 행사에 머물기 쉬운 기자 만찬을 전시장 한가운데로 끌어올림으로써, 가구를 감상하는 방식과 식사를 나누는 행위가 하나의 물리적 장면 안에서 동시에 전개되도록 설계했다.
판금 테이블과 시야를 나누는 가구들
프랑크 펜더르스와 뤽 판 라르호번은 이 전시를 위해 판재를 자르고 접어 테이블 몸체를 함께 만들었다. 디진의 현장 보도에 따르면 금속 표면에는 브러시 질감과 색의 변화를 직접 드러냈고, 테이블 끝에 배치한 거울은 가구가 더 멀리 이어지는 듯한 장면을 공간 안에 만든다. 길게 앉는 형태가 가구의 단순한 부피에 머물지 않고 공간 전체를 바라보는 중심축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재료의 반사와 표면 가공을 장식으로 덧붙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주 앉는 길이와 보이는 범위를 함께 읽게 하는 장치로 배치했다.
파블로 옥타비오의 브러시 처리한 알루미늄 칸막이는 커튼 같은 형상을 취한다. 원문은 그 높이 덕분에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보다 방을 더 넓게 살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 있는 시선에서는 가려지는 풍경이 앉았을 때는 열리도록 구성해, 관람자의 신체 위치에 따라 공간을 인식하는 조건이 달라지도록 유도했다. 테이블 주변에는 마르크 메이위선의 각진 목재 스툴 바리카다, 스튜디오 파비우스 클로비스의 고광택 합판 가구, 루카스 지토의 바이오플라스틱 3D 프린트 펜던트도 함께 놓였다.
합판의 고르지 않은 표면을 강조하는 광택과 반투명하게 빛나는 출력물은 같은 방 안에서 서로 다른 재료 감각을 명확하게 대비시킨다. 둘러놓인 물건들은 각각의 조형과 제작 방식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사이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의 자세와 시선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배경이 된다. 전시는 개별 가구를 독립된 제품 목록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구의 높이와 질감이 사람의 시야를 규정하는 물리적인 환경을 만들어낸다.
보이는 디자인을 결정하는 매개자의 초대
이 자리에 가장 먼저 초대된 대상이 국제 디자인 매체의 기자들이라는 점은 전시에 중요한 의미를 더한다. 새로운 물건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은 무엇이 널리 알려지고 기억되는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제작자는 디자인의 유통을 중개하는 이 매개자들을 전시 바깥의 단순 관찰자로 두지 않고 긴 테이블 안으로 직접 불러들였다. 만찬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도를 생산하는 주체들을 전시물 한가운데 앉히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회의실의 힘을 사진으로 남긴 하싱크의 작업이 텅 빈 공간을 통해 권력을 암시했다면, 이번 구성은 실제로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과 물건을 같은 장면에 나란히 놓는다. 주최 측의 평등사회 프로그램 역시 이 전시를 누구에게 발언과 식사의 자리가 주어지고 누가 대화의 흐름을 정하는지 묻는 구체적인 사례로 연결했다. 디자인의 가치를 기록하고 알리는 사람들이 점유하는 물리적인 위치를 질문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의자와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
테이블과 의자의 배치를 바꿀 수 있게 해 두어도 사람들이 실제로 그 권한을 사용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공식 DDW 프로그램은 전시의 구성에 프레스 디너를 포함하고, 보도는 초대받은 기자들에게 의자를 옮기도록 권했지만 실행한 사람이 적었다고 전한다. 가구의 이동 가능성과 모임 안에서 느끼는 행동의 자유가 언제나 같지는 않은 장면이다.
알루미늄 칸막이도 시야를 단순히 차단하는 벽으로만 읽기 어렵다. 앉은 사람과 선 사람에게 서로 다른 범위를 보이게 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끝의 거울은 이와 달리 자신이 속한 장면을 되비춘다. 시선을 통제하거나 되돌리는 방식과 자리를 옮길 수 있게 하는 방식을 나누면, 전시가 권한이라는 질문을 여러 물건에 배분한 구성이 드러난다.
| 장치 | 달라지는 관계 |
|---|---|
| 긴 테이블과 의자 | 누구와 나란히 앉고 어느 위치를 선택하는가 |
| 알루미늄 칸막이 | 앉거나 서 있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
| 테이블 끝의 거울 | 자신을 포함한 모임의 장면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
기획자는 만찬 참석자들에게 식사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바꾸며 권력을 분산해보라고 권유했다. 정해진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면서 만찬이 지닌 위계를 허물고 대화의 주도권을 나눠 갖도록 유도한 시도였다. 하지만 디진의 현장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자는 많지 않았다. 이는 한 취재 현장에서 포착된 구체적인 장면이며 참석자 전체나 관련 업계의 성향을 수치로 평가한 조사 결과는 아니다.
동시에 참여를 유도한 공간 배치가 곧바로 참여라는 실질적인 행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구체적인 단서를 남긴다. 길게 이어진 테이블의 인상적인 외형과 현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인 방식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함께 기록해야, 전시를 평등한 만남의 단순한 성공 사례로 섣불리 단정 짓지 않을 수 있다. 전시가 제안한 규칙과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실제 반응 사이에 발생한 차이는 이 기획이 마주한 솔직한 한계를 드러낸다.
ARCH.B 의견
전시 기획은 작품 설명문을 벽면에 적어두는 데 머무르지 않고, 누가 먼저 자리에 앉고 어느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지 물리적인 배치를 통해 질문할 때 실질적인 힘을 얻는다. 쇼 낫 쇼의 테이블은 여러 물건을 한데 모으는 받침대이자 매체와 제작자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작동했다. 디자인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보도 매체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전시장 안의 만찬 자리로 시각화한 점은 분명 유효한 접근이었다.
다만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 장치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참석자들의 관성적인 태도와 현장의 분위기까지 면밀히 계산되어야 한다. 자리를 바꿔 앉으며 권력을 나누라는 기획자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현장의 모습은, 의도된 장치만으로는 굳어진 관계를 단숨에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처럼 물리적 배치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함께 확인해야만 디자인이 권력과 매체의 관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